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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추천도서] 박홍규의 <메트로폴리탄 게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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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469회 작성일 15-05-06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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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추천도서]
<메트로폴리탄 게릴라>-박홍규의 루이스 멈퍼드 읽기
저자: 박홍규 영남대 교수
출판사: 텍스트
독서토론 일시: 2015년 5월 30일 오후 1시
            장소: 제6별관(홍성사 동아리방)
        초대손님: 박홍규 영남대 교수
            진행: 지강유철 선임연구원


루이스 멈퍼드는 1895년 뉴욕 빈민가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1990년에 죽은 미국의 사상가입니다. 그는 자기가 사생아란 사실을 멈퍼드는 47살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그 이후 군대 가는 아들에겐 그 사실을 일찍 알렸으나, 딸에게는 87세에 쓴 자서전을 통해서야 간접적으로 알렸습니다.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40년 동안 딸에게 숨겼던 것입니다. 자유분방한 줄로만 알던 미국에서도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에는 사생아를 가능한 한 숨기고 싶었다는 걸 알게 되니 마음이 짠합니다.

멈퍼드는 최종 학력이 시립 야간 대학 2년 중퇴였습니다. 그는 기술, 도시, 역사, 문학, 철학 예술 등을 평생 독학으로 배워 각각의 분야에 매우 중요한 저작을 남긴 20세기의 대표적 문명비평가입니다. 고졸이었지만 스탠퍼드와 MIT에서 가르쳤고, 미국보다는 유럽에서 더 유명했습니다. 1965년에는 에든버러 대학교로부터 8,9회 제안 끝에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75년에는 영국 정부로부터 기사 칭호를, 1986년에는 미국 정부로부터 국가 예술 메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2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을 만큼 우리와 동시대인이었지만 멈퍼드는 박사는커녕 학사 자격조차 없었음에도 미국과 유럽 최고의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20세기가 기억할 만한 저술을 남겼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학벌과 스펙을 중시하는 나라에서 숨 쉬며 살다 보니 고졸 또는 야간 대학 중퇴라는 최종 학력을 가졌던 멈퍼드를 실력으로만 대접해 준 미국과 유럽의 탈권위적인 분위기가 부럽습니다.

멈퍼드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40여 년의 생의 말년을 시골 통나무집에서 기거하며 농사를 지었습니다. 운전면허증과 TV, 컴퓨터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시골에서 60을 훌쩍 넘긴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부지런히 책을 썼고, 그 책들은 전문성과 깊이에서 모두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루이스 멈퍼드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도, 많은 독자를 거느린 작가나 학자도 아닙니다. 도시학 쪽에서는『역사 속의 도시』라는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는 합니다만, 그가 도시학자로서 60년대에 제시한 주장들은 오늘날 거의 무시됩니다. 도시학에 못지않게 기술에 대해, 예술에 대해, 건축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였지만 한국에는 거의 무명에 가까웠습니다. 그의 『예술과 기술』이 1999년에, 『역사 속의 도시』가 1990년에, 『기술과 문명』이 1981년에, 그리고『해석과 예측』이 1978년과 1983년에 각각 번역되었지만 모두 절판되었습니다.

영남대 박홍규 교수가 2010년에『유토피아 이야기』를 번역하고 『메트로폴리탄 게릴라』를 출판하면서 우리 사회는 멈퍼드를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박홍규가 1년 뒤 같은 출판사에서 『예술과 기술』, 『인간의 전환』을 번역하자 다른 출판사들은 2013년에 『기술과 문명』, 『기계의 신화 1』를, 2014년에 『루이스 멈퍼드의 건축비평선』을 번역하였습니다.  

1922-1982년까지 28권의 책을 썼지만 멈퍼드는 주류 학자는 아니었습니다. 아니 주류가 될 수 없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멈퍼드는 ‘모든 거대한 것에 저항한 사람’이었습니다. 거대도시·거대기계·거대예술·거대이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던 것입니다. 그에게 모든 거대한 것은 추악했습니다. 때문에 멈퍼드는 평생 소박함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현대의 기술이나 도시나 과학 자체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멈퍼드는 거대기계가 없던 과거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무책임한 학자가 아닙니다. 그는 “철저히 반권력적 입장에서 자유․자치․자연을 예술과 기술, 그리고 생태의 조화․균형․절제”를 추구했던 아니키스트였습니다.  

멈퍼드는 자신을 ‘스페셜리스트’와 반대의 의미에서 ‘제너럴리스트’라고 불렀습니다. ‘제너럴리스트’로서 멈퍼드는, “개별적인 부분을 상세하게 연구하기 보다는 그러한 파편들을 하나의 질서 있고 의미 있는 패턴 속에 통합”하는 일에 평생 매진하였습니다.

그는 폭군으로 변한 거대기술과 공허하고 비합리적인 것이 되어버린 예술을 거부하고 종교․철학․예술․기계의 조화를 복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앎을 삶과 일치시키기 위해 평생을 대학 밖에서 프리랜스로 살았습니다. 생애의 마지막 40년은 농사를 지으며 사숙했던 에머슨의, “인간은 신성을 소유하므로 자연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내면의 신성을 개발하면 완전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을 평생 견지했습니다.

그는 시사적인 문제보다는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하였습니다. 현대 도시나 기술의 문제의 해결을 하기 위해 관련 역사를 철저하게 공부했을 뿐 아니라 우리 시대의 문학, 예술, 기술, 도시, 자연, 과학, 인간, 권력 등에 대해 폭넓게 공부하였습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과학을 포기하거나, 과학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인간을 파괴하는 것 모두에 동의하지 않고 그 둘의 조화와 결합을 평생 주장했습니다.

박홍규에 의하면 멈퍼드는 무엇보다 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현대의 거대기기만을 비판한 게 아니라 고대의 거대기기인 피라미드도 비판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멈퍼드는 과거 피라미드가 종교였듯 오늘날 우리의 원자력을 비롯한 모든 거대 기술 또한 종교가 되었음을 경고합니다.

루이스 멈퍼드는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를 향해 자신처럼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가능한 한 현대 문명과 무관하게 살기를” 권합니다. 도시와 기술과 과학과 권력에 “제한과 억제와 규제” 가하면서 희망을 만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멈퍼드는 자신의 앎과 실천의 경로를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랠프 월도 에머슨, 너새니얼 호손,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트 휘트먼은 그의 세계관 형성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영국의 문예비평가 존 러스킨과 윌리엄 모리스의 아나키즘 또한 그를 말하게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윌리엄 모리스는 그가 평생 가장 존경한 사상가였습니다.

박홍규는 언제나 그렇듯 『메트로폴리탄 게릴라』 또한 멈퍼드의 모든 책을 읽고 그에게로 나아가는 지도를 한 장 그려주었습니다. 박홍규는 멈퍼드의 주장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멈퍼드가 우리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이 책을 쓰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저자의 이런 표현을 읽으며 맥이 빠지는 독자도 있겠으나 마지막 선택을 독자에게 넘겨준 것에 대해 신뢰를 느낄 독자들도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차분한 일독을 권합니다.

                                                                  글_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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