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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추천도서] 장 뤽 낭시,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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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364회 작성일 15-07-0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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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문화원 독서모임 ‘책과 함께’ 7월의 추천도서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
-저자: 장-뤽 낭시, 옮긴이, 이영선, 갈무리, 2012.
독서토론 일시: 2015년 7월 25일(토) 오후 1시
장소: 홍성사 동아리방(100주년기념교회 제6별관)


1.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은 프랑스 파리 몽트뢰유 연극센터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장-뤽 낭시가 했던 네 개의 강연을 묶은 책입니다. 6살에서 12살 사이의 어린이들을 상대로 낭시가 신을 주제로 첫 강연을 한 것은 2002년 5월이었습니다. 정의에 대한 두 번째 강연은 2006년 10월에 했고, 사랑에 관한 세 번째 강연은 2008년에 2월에 이어졌습니다.  아름다움이 주제였던 네 번째 강연은 2009년 1월에 했습니다. 8년에 걸친 강연을 책으로 냈다는 사실에 눈길이 가는 것은, 이 강연이 어린이들을 상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네 강연을 다 들은 아이들은 많지 않았지 싶습니다.
이 강연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포인트는 장-뤽 낭시의 나이입니다. 1940년생이니 낭시는 62살부터 70살까지 어린이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을 주제로 강연을 한 것입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신과 정의와 사랑과 아름다움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때로는 음악을 틀어주고, 때로는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책의 거의 절반가량은 낭시의 강연 이후 이어진 아이들의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버거운 주제의 강연을 들으며 질문을 던지는 아이들, 그 사이 간간이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이 책 읽기에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하지만 장-뤽 낭시 본인은 8년 동안 진행된 네 차례(뿐 인지 더 많은 강연을 했는데 네 강연만 책으로 묶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강연이 무척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 어려움은 낭시가 아이들이라고 자신이 평소 주장하던 내용에서 벗어나 일반적이고 쉬운 이야기로 강연을 구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따라온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그래선지, 번역자도 인정할 만큼 이 책은 쉽지 않습니다. 70에 가까운 할아버지가 꼬맹이들을 높고 하는 진지한 철학 강의의 풍경 자체도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지만 이 강연을 준비하거나 끝난 이후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낭시의 태도와 자세는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제가 일종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구상했던 정도와 모습들이 어떻든 간에, 이 작업의 업적은 본질적으로 그 상황, 더 나아가 그 전개과정에 있을 것입니다. 여기 아이들 앞에 서 있는 나이 든 사상가란 없습니다. 다만 그러한 자각, 즉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일깨움과 더불어 자아를 발견하고 있는 한 사상가가 있을 뿐입니다.”(p.8)

낭시는 강연을 끝낸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끝내지 않았습니다. 세심하게 당시 상황이 오롯이 담기도록 문장을 다듬고, 사랑을 주제로 한 강연의 경우 이 질문이 남자 아이의 것인지 여자 아이의 것인지를 구분해 표기합니다. 강연 때 놓쳤던 부분을 설명하거나(p.141 각주7), 어떤 아이의 질문에 대해 미처 답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답을 합니다. 녹취를 풀어 문자화된 자신의 대답을 읽으면서 그 내용을 스스로 정정하기도 합니다(p.146, 각주9). 물론 강연에서 자신이 했던 여담에 대해 부연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p,126-127 각주3).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그가 이 강연과 책에 얼마나 애정이 많았는지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2.
장-뤽 낭시Jean-Luc Nancy는 1940년 프랑스 보르도 근처 코데랑에서 태어났습니다. 가톨릭 전통에서 자란 낭시는 어려서부터 기독교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일에 흥미가 많았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는 철학을 지배하고 있던 종교와 이성의 울타리 제거와 학문 간 영역의 장벽을 없애는 일이 절실함을 자신의 중요한 학문적 과제로 삼았습니다. 1960년에 파리 대학을 졸업하고 칸트, 니체, 맑스 등의 사상가들을 연구하였습니다. 1968년부터 스트라스부르 대학 철학과 조교를 재직하며 평생 학문적 동지였던 필립 라쿠-라바르트와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이 둘은 1972년에 『문자라는 증서』를, 1978년에는 『문학적 절대』를 공동집필하였습니다. 이 책들은 당시 프랑스 대학에서 소홀하게 다뤄지던 독일 낭만주의에 대한 분석과 재해석으로 주목받았습니다. 1973년에는 폴 리쾨르와 칸트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스트라스부르 인문대학 전임강사가 되었습니다. 1987년에 취득한 국가박사학위는 자크 데리다와 장 프랑소와 리오타르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였는데 이때 쓴 칸트와 셸링, 하이데거에서의 자유 개념을 연구한 논문은 다음해에 『자유의 경험』이란 제목을 출간되었습니다. 그는 1986년에 쓴 『철학의 망각』과 『무위의 공동체』를 통해 사회주의 몰락 이후의 공동체와 공산주의를 다루면서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특히 『무위의 공동체』는 아감벤과 자크 랑시에르 등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때부터 낭시는 베를린 대학과 버클리 대학 초빙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1980년대 말에 낭시는 심장 이상 수축 증상으로 심장이식수술을 받았고, 암까지 발병을 하여 꽤 긴 시간 동안 투병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집필을 계속하여 그의 전반적 사유가 담긴 『세계의 의의』, 『복수적 단수의 존재』, 『뮤즈들』을 출간하였습니다. 2000년에는 자신의 투병생활을 바탕으로 『침입자』를 썼는데 영화감독 클레어 드니가 이 저서를 소재로 『침입자』란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낭시는 영화, 미술, 설치 예술, 안무가 등과 교류하며 공동저서들을 출간하였습니다. 클레에 드니는 단편영화 <낭시를 향하여>를 찍었는데 낭시는 이 영화에 출연하여 이주자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낭시의 가장 큰 관심은 교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몰락 이후에 가능한 공산주의의 문제, 공동체의 문제였습니다. 그는 현재 프랑스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철학자들 중 한사람입니다.

3.
앞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이 책은 “아무리 프랑스라고 해도 그렇지, 과연 아이들이 이 강연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란 질문을 절로 던지게 됩니다.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아이들을 위한 강연이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어렵다는 점에만 눈길이 가면 이 책 읽기를 포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이를 위한 책이란 사실이 크게 보이면 책을 덮는 대신 왜 이렇게 어려울까, 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이 어려운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우선은 이 책이 우리의 예상을 빗나가기 때문입니다. 낭시는 우리가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을 떠올릴 때, 또는 그것을 어린이들에게 이야기해 주려고 할 때 우리의 생각 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들과는 너무 다른 소재와 방식을 동원해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낭시는 아이들에게 주제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이런 저런 예화를 드는데 해리포터의 예를 제외한 거의 모든 예화가 우리에겐 우린 생소합니다. 조금 과장한다면 프랑스 철학에 익숙한 이들이 아니라면 마음 편하게 키득거리며 읽을 수 있는 대목은 아이들과의 질의응답뿐 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질문과 낭시의 대답이 책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정리하자면 이 책의 우리의 이해를 가로막는 것은 문화적 차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을 인식하며 이 책 읽기를 포기하려던 지점에서 조금 앞으로 가서 다시 시작한다면 훨씬 이해가 잘 될 것이라 예상합니다.

4.
순서대로라면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거나 인상 비평을 해야 할 타이밍이지만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생략하려고 합니다. 다른 책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나와 저들의 차이를 인식하고 좀 불편하고 귀찮더라도 그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려는 애정이 있어야 비로소 읽힐 이 책의 내용에 대해 고주알미주알 이야기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입니다. 고등학교에서 논술 시험을 만든 목적이 ‘4지선다형’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시작했지만 학원이 성행하면서 논술마저도 또 다른 ‘4지선다형’의 아류로 전락했듯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낭시 읽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할 것을 제안합니다. 어느 정도 이해를 하느냐는 이제 전적으로 독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이 책의 경우처럼 나와 상대가 생각하고 말하려는 내용의 차이가 아니라 말하는 방법, 사용하는 예화, 그러니까 소위 문화적 차이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는 게 맞다면 이 책에 대한 추천사는 이쯤해서 물러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독자를 진정 독자를 배려하는 고품질의 서비스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시작하려는 이들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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