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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추천도서] 오에 겐자부로, <읽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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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846회 작성일 15-12-0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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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문화원 독서모임 ‘책과 함께’ 12월의 추천도서
『읽는 인간-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위즈덤하우스, 2015.
-저자: 오에 겐자부로, 역자, 정수윤  
독서토론 일시: 2015년 12월 28일(월) 오후 6시
진행: 지강유철
장소: 선교기념관 1층 100주년기념재단 희외실

지난해에 이어 올 12월에도 양화진 문화원 독서토론 모임이 선정한 추천도서의 주제는 '책 읽기'입니다. 작년 12월 추천도서였던 정수복의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이 독자의 입장에서 책에 질문을 던졌다면 올 해 12월 책인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은 작가의 입장에서 책에 다가갑니다. 양화진 문화원이 작년에 이어 올 해에도 이 주제로 책을 선정한 것은 많은 사람들의 책 읽기가 방향을 상실하고 표류한다는 진단 때문입니다. 책 읽기가 실용적 목적만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책 읽기가 어떤 책의 주제와 목적을 파악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책을 왜 읽는지, 책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그리고 책을 통해 얻는 지식의 한계는 무엇인지를 인식하되, 그것을 주기적으로 확인하자는 것입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1935년에 태어나 도쿄 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하던 중 1957년 〈도쿄 대학 신문〉에 게재한 단편 〈기묘한 일〉로 데뷔하였습니다. 50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면서 오에 겐자부로는 『사육』으로 아쿠타가와상, 『개인적인 체험』으로 신초사 문학상, 『만엔원년의 풋볼』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오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오에는 소설을 쓰면서 일본 헌법 9조를 지키기 위한 반전 평화와 휴머니즘적 가치를 높이는 일에 사회적 발언을 계속하고 있는 행동하는 지식인입니다. 이러한 그의 활동을 기리기 위해 2006년에는 그의 집필 50주년을 기념하여 ‘오에 겐자부로상’이 제정되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이란 부제가 붙은 『읽는 인간』에서 작가는 “정녕 제 인생은 책으로 인해 향방이 정해졌음을, 인생의 끝자락에서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책들이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만들었으며, 그 결과는 작품에 또한 어떻게 투영되었는지를 직접 보여준 것입니다.    

『읽는 인간』은 본문이 2부로 구성되어 있고, 그가 30년 이상 사귀었던 에드워드 사이드에 관한 글을 부록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1부는 그가 9살 때 마크 트웨인의『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어떻게 운명적으로 만났는지를 말하며 그때 했던 평생의 다짐을 소개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 헉은 노예였다가 도망친 흑인 청년과 미시시피 강을 여행하며 도움을 받습니다. 헉은 교회에서 남의 재산을 훔치는 일에 가담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 배웠기 때문에 흑인 청년의 주인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 마을에 당신의 재산인 짐이 있다. 현상금을 주면 당신의 재산은 집으로 돌아 갈 것이다.”는 내용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헉은 그 편지가 매우 잘못되었다는 점을 깨닫고 찢어버릴 것을 다짐합니다. “난 이 생각을 버렸고, 결코 번복하지 않을 거야. 이런 편지는 두 번 다시 쓰지 않겠어.” 그리고는 편지를 찢으며 “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라고 말합니다. 지옥으로 가도 좋으니 좋은 흑인 친구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헉의 다짐은 9살짜리 오에를 사로잡았고, 오에는 평생 이 마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합니다(p19-20). 이때부터 오에 겐자부로의 삶은 책을 읽고, 암기하고, 그것을 원어와 대조하고, 그 작품에 대한 전문학자의 해석을 연구하는 것으로 일관합니다. 이런 고백은 학자나 소설가에게는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는 일상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소년 때 읽었던 감동적인 책이나 그것에 대해 썼던 자신의 기록을 평생 간직하고 있다는 고백은 조금 독특해 보입니다. 심지어 그는 수십 년 전에 기고했던 잡지까지 모두 모아놓았을 정도로 자신의 책을 간직하는 일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았습니다. 그의 아내에 의하면 오에 겐자부로는 “결혼 생활의 3분의 1은 서고에 들어가 책을 찾는 시간”으로 보냈습니다. 그랬기 때문인지 오에는 “제 서고의 책과 저도 그렇게 혈관으로 이어져 있다고 느끼며 살아왔”(p.10)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생활을 통해 오에는 독서에서 자신을 발견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겪은 비통한 슬픔 속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의 소설은 그런 과정을 담아낸 것이라는 얘깁니다. 때문에 그는 “정녕 제 인생은 책으로 인해 향뱡이 정해졌음을, 인생의 끝자락에서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책이 구원이었다는 것입니다.

2부는 ‘내가 지독하게 읽은 이유’란 제목 아래에서 자신의 80년 인생을 회고합니다. 1부가 소설가가 되기 위한 자신만의 읽기, 언어 감각 익히기 등에 집중된다면, 2부는 자신의 삶에서 만났던 구체적인 사건과 그 사건이 작품에 어떻게 담겼는지를 설명합니다. 그의 중요한 소설들이 자신의 삶과 어떻게 밀착되어 있는지를 비교적 소상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삼부작인 『체인지링』,『우울한 얼굴의 아이』,『책이여, 안녕!』이 어떻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담고 있는지는 물론 그의 정신적 장애를 가진 아들이 새소리를 매개로 새로운 가족 관계가 시작되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까지 말입니다. 또한 단테의 『신곡』을 읽으며 느꼈던 경이로움과 자신의 평생 독서 읽기의 원칙이라 말할 수 있는 “배우기, 외우기, 깨닫기”도 잘 담겨 있습니다. 부록은 그의 절친이었던 에드워드 사이드가 자신에게 끼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와 맺게 된 특별한 관계를 통해 자신이 문학인과 지성인으로 말년을 어떻게 바라보며 준비할 수 있었는지를 고백합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읽는 인간』에서 T. S. 엘리엇, 에드가 엘런 포, 윌레엄 블레이크 등이 평생을 곁에 두고 읽어야할 만한 작가란 사실을 자신의 평생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인지를 입증하려면 우리의 남은 인생이 모두 필요하겠지만 말입니다.

끝으로 이 책은 2006년 6월부터 12월까지 매달 일본 준쿠도 서점 이케부쿠로 본점에서 열렸던 다섯 차례의 강연과 2011년 6월 엑셀문화센터의 열린 강연, 그리고 2006년 에드워드 사이드를 기리는 영화 <아웃 오브 플레이스> 기념상영회 강연을 풀어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독자들은 오에 겐자부로가 전문적인 문학 연구자를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싶습니다.

“…제 언어의 세계에 다양한 형태의 영어나 프랑스어 원서가 메아리쳤습니다. 그것을 일본어로 옮겨놓고자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정말 새로운 언어와 만나게 됩니다. 혹은 새로운 문장이 떠오르기도 하죠. 이런 식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외국어와 일본어 사이를 오가면서 이렇게 언어의 왕복, 감수성의 왕복, 지적인 것의 왕복을 끊임없이 맛보는 작업이,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운 문체를 가져다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대부분은 번역을 하게 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소설을 썼습니다. 이렇게 해서 제 소설의 세계가 시작된 것이지요.”(p.67)

강연을 풀었기 때문에 그의 다른 책에 비해 쉽다는 것이나 책의 내용 중 공감과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가 많다는 것에도 대다수 독자들은 수긍할 것입니다. 그러나 『읽는 인간』이 외국어 하나쯤은 통달한 독자를 대상으로 한 강연이라는 인상은 보통의 독자들로 하여금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공감에 도달하기엔 수월치 않다는 얘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읽는 인간』은 독서에 있어서 지적인 동의와 정서적 일체감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흔치 않은 책인 듯합니다.

글_지강유철(양화진 문화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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