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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다시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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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재원
댓글 1건 조회 5,740회 작성일 13-05-0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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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스의 시간을 그리며

아스라한 옛날, 삼중당((三中堂)에서 발행한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 경도되었던 그 즈음에, 나는 필연적으로 '말테의 수기'를 만났다. 필연적이라는 의미는 나의 문학소녀시절에 대한 과람한 오마주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칼릴지브란'의 '예언자'는- 삽화와 함께 삶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로- 나의 속뜰을 채워주고 있었는데..그 무렵 만난 릴케/말테의 수기가 나를 흔들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이 도시로 몰려드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곳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내 영혼을 흔들었던 말테의 수기 첫 문장이다.
그 즈음의 나는 릴케류(類)의 서정시들을 폄하하는 것으로 어설픈 문학의 편재를 드러내고 있었는데..
릴케의 소설 말테의 수기는 첫 문장에서부터 나를 압도했다.
그러나 막상 읽기 시작한 말테의 수기는 읽어갈수록 이해하기 어렵고 지루한 이야기가 반복되어 소설의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문학소녀로서의 자존감 외에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되는, 말테의 수기 곳곳에 서려있는 주인공 말테 라우릿츠 브리게의 전인적(全人的)고뇌가, 내 영혼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의 독서편력 목록에서 말테의 수기가 빠졌던 것은 무슨 연유일까.
문학소녀시절 필연적으로 만나 내 영혼을 흔들었던 말테의 수기를 나는 왜, 어찌해서 잊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목요강좌에서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된 기억 저편의 책-1975년판 삼성출판사 간행의- 옛연인 같은
'말테의 수기' 를 서재의 깊은 구석에서 어렵사리 찾아냈다.
누렇게 빛바랜 책장에 세로로 인쇄된 깨알같은 글씨의 말테의 수기를 대하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말테의 수기 본문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서문으로 보이는 릴케의 편지글이 있었다.

"나는 얼마 전부터 자기의 본질을 방전시켜나가는 데 있어서 섬세하고 탐색적인 사람들에게 그들이 체험한 것과 유사한 것을 이 手記에서 찾으려는 생각은 그만두도록 엄숙하게 경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유혹에 빠져서 이 책과 나란히 가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필연적으로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오로지 어느정도 그와는 역행하여 읽어나가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만 기쁨을 주게 될 것이다.
이 手記는 몹시 팽배된 고뇌를 가름하면서, 충만된 자체의 힘으로서 성취되어가는 영혼이 어느 높이에까지 상승할 수 있는가를 암시해 주고 있다."
(1912년 2월의 편지에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전혀 없는 서문 편지글은 곱씹어 읽을수록 독자를 향한 작가 릴케의 진지한 사유와 의지가 살결처럼 묻어났다.
말테의 수기를 읽는 내내, 릴케가 소설쓰기에 바친 6년 동안의 고투의 흔적이 문장의 행간에서도 확연하게 느껴졌다.
나이들어 다시 읽는 말테의 수기는 깊은 울림으로 내 영혼으로 젖어들었다.
책을 읽다가 예전에 줄을 쳐놓은 문장을 만나게 되어 와락 반가웠다.

"인생이란 이런 것이겠지. 가장 중요한 것은 산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말테의 수기는 주인공 말테가 소설의 첫 문장에서 말한 생명의 대전제, 이를테면 죽음을 포함한 생명(生卽死)을 전제로 한, 인간의 삶과 신에 대한 전인적(全人的)고뇌로 수기 전체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하고 있다.
말테의 영혼적 방황의 외연(外延)인 - 피폐한 세태로 대변된 파리 시가지의 불안의 냄새, 고독과 절망, 갈등과 성찰, 죽음의 공포와 죽음에 대한 경외, 여러 겹의 얼굴에 숨어있는 실존, 어린시절의 추억 등 - 인간 존재의 의문과 신의 문제를 릴케는 삶과 죽음의 연결고리로 바하의 푸가처럼 반복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릴케를 촘촘이 읽으며.. 그의 문학의 천재성은 천부적 감성과 사유(고뇌)의 깊은 방황에서 기인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는 파우스트의 말처럼.
삶의 깊은 고뇌를 영혼적으로 고양시킨 릴케는 신의 시간인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았을까.
나는 말테의 수기 마지막 이야기, 돌아 온 탕아의 변화된 모습에서 투영되는 릴케의 삶을 유추해보았다.
영혼이 확장되는 카이로스의 시간에 대하여...

이번 목요강좌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다시 만난 소중하고 가슴벅찬 시간이었다.
릴케 문학의 깊은 숲으로 인도해 주신 이어령 선생님께 마음을 다하여 감사드린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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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의님의 댓글

임종의 작성일

감사! 할렐루야~~